어마어마한 기록의 양, 세종 업적의 위용
세종대왕,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겠죠. 그런데 세종대왕을 그저 한글을 만든 훌륭한 분 정도로만 알고 넘어간다면 조금 서운한 일입니다. 오히려 한글 창제라는 거대한 업적 때문에 다른 수많은 치적이 덮여버리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나하나 짚어보면 정말 대단한 업적들을 남긴 임금이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우리가 조선 왕의 업적을 살펴보고자 할 때 주로 참고하는 것이 바로 [조선 왕조 실록]입니다. 왕이 죽은 후 그 왕과 관련된 기록, 왕에게 올라온 상소문,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기록한 [승정원일기] 등 각종 문서를 모아 왕에 대한 모든 기록을 정리한 것이 실록이니까요. 실록의 수 또한 상당합니다. 총 2077 책(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죠. 이 모든 실록 중에서 가장 방대한 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세종실록]입니다. 실록은 여러 벌을 필사해 보관하는데, [세종실록]은 모두 163권으로 양이 너무 많아 딱 한 벌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 6년이 지나 세조 때에 이르러서야 금속활자 인쇄를 이용해 간신히 세 벌을 더 제작하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조선 왕조 실록]은 보통 편년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편년체란 일어난 일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1일, 2일, 3일,...... 날짜순으로 기록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적으면 상당히 꼼꼼하고 세심한 기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세종의 어마어마한 업적을 편년체로 다 기록하기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종실록]은 총 163권 중 127권까지는 편년체로 기록되어 있지만 나머지 36권은 시간 순서가 아닌 주제별, 사건별로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기술 방식을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왕의 업적을 모두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종대왕의 업적이 체감되시나요?
세종이 앓던 치명적인 병, 활자 중독증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데에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세종은 조선의 제3대 임금 태종의 세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지죠. 보통은 첫째 아들이 왕이 되기 마련인데 세종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을까요? 처음에는 태종도 순리에 따라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그런데 양녕대군의 세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정신세계가 꽤나 독특했다고 할까요. 이에 비해 세종은 타고난 천재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금 중에 천재로 꼽히는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전기의 세종과 조선 후기에 등장한 정조인데요. 정조가 노력형 천재였다면 세종은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세종은 왕자 시절 충녕대군으로 불렸는데, 태종에 대한 기록 중에서도 충녕대군의 총명함과 학문에 대한 열정, 정치적 감각 등을 칭찬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얼마나 독서에 몰두했던지 시력에 무리가 오고, 몸이 아파 누워 있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서 아버지 태종이 신하들을 시켜 충녕대군 방에 있는 책을 모두 치워버리게 했답니다. 그러자 세종은 우연히 병풍 뒤에 있어 빼앗기지 않은 책 한 권을 찾아내 이불속에 감춰두고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이런 일화들이 전하는 걸 보면 세종은 거의 활자중독 수준의 공부 마니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은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한글은 세종 대에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그 정황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건 아닙니다. 한글 창제와 관련해 공동창제설과 단독창제설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세종이 신하들과 함께 한글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정말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단독으로 만들었는지 논란이 있다는 얘기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러 가지 근거들이 단독창제설, 즉 세종이 혼자 한글을 만들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일단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공표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한글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실록은 왕이 한 일을 자세히 기록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실록에는 군사기밀은 물론 국가의 일급 정보까지 왕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만약 세종이 공개적으로 신하들을 모아놓고 함께 한글을 만들었다면 이 내용이 반드시 적혀 있었겠죠. 그런데 이런 기록 없이 훈민정음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을 통해 세종이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혼자 문자를 만들었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종은 왜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요? 훈민정음이 발표되자 이에 반대하는 관료들의 반발이 빗발칩니다.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상소 중 대표적으로 최만리가 올린 상소문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 중국의 문물을 본받고 섬기며 사는 처지에 한자와는 다른 이질적인 소리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한자와 다른 글자를 가진 민족은 몽골, 여진, 일본 등 하나같이 오랑캐들뿐이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이다. 셋째, 한글은 쉽기만 한 것이라 어려운 한자로 표현된 중국의 높은 학문과 멀어져 우리네 문화 수준을 떨어뜨릴 것이다. 넷째, 훈민정음이 억울한 송사에 휘말리는 백성을 구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최만리의 상소는 철저히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터무니없는 트집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무튼 훈민정음 반포 후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엄청난 양의 상소문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한글 창제 전까지는 한글과 관련된 상소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만약 소문이 조금이라도 돌았다면 관료들이 어떻게든 기를 쓰고 상소를 올렸을 텐데 말이죠. 이 말은 곧 세종이 한글을 만드는 걸 아무도 몰랐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