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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한국 역사 이야기: 조선의 쇠락

by ucodehouse 2024. 10. 24.

세도가문의 득세

 세도정치란 극소수의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고 나랏일을 마음대로 하는 정치 형태를 말합니다. 정조 사후에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세도정치가 이어졌습니다.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은 안동 김 씨, 풍양 조 씨 같은 가문이 국정을 좌지우지했지요. 순조의 손자인 제24대 왕 헌종은 고작 여덟 살에 왕이 됐어요. 조선 왕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즉위한 인물이지요. 안 그래도 왕권이 추락한 상황에 어린아이가 왕위에 올랐으니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영조와 정조 재위기간에 신하들은 왕에게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로 불리지만, 신하들 입장에서는 암흑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권력의 맛을 본 세도 가문들은 또다시 강한 왕을 만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허수아비 왕을 데려다 앉혔습니다. 헌종이 2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식도 없이 죽자,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철종을 제25대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철종은 왕족이었지만 그의 할아버지가 역모사건에 휘말리면서 가족이 모두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신하들이 마음대로 휘두르기 딱 좋은 조건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올려놓은 왕이었던 것이지요. 


삼정의 문란

 세도 가문의 악행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대표적인 돈벌이 수단이 '매관매직'이었습니다. 관직을 파는 거예요. 큰돈을 내고 관직을 산 관리들은 자기가 쓴 돈을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을 수탈했습니다. 세금을 명목으로 탈탈 털어갔지요. 이 과정에서 조선의 세금 체계가 완전히 붕괴됩니다. 조선 후기의 세금 제도로는 '삼정'이라고 하는 전정, 군정, 환곡이 있었습니다. 전정은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이고, 군정은 '군포'를 말합니다. 당시 16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은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어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옷감인 베를 납부하기도 했는데, 이게 바로 '군포'입니다. 환곡은 일종의 백성 구제책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절인 가을에 이자를 쳐서 갚게 하는 제도였지요. 그 이자로 국고를 충당했던 것입니다. 부패한 관리들이 이 제도들을 제대로 운영할 리 없었겠죠? 가장 문제가 많았던 것은 군정입니다.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걷기 위해 60세가 넘는 노인은 물론, 16세는커녕 갓 태어난 아기한테도 세금을 매긴 거예요. 심지어는 죽은 사람한테도 매겼어요. 그러니까 군포를 한 필만 내면 되는 남성이 아들 몫, 연로한 아버지 몫, 돌아가신 할아버지 몫까지 네 필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사람이 생기면 이웃에게 그만큼의 세금을 더 물렸습니다. 이러니 백성들이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오죽하면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이게 다 아이를 낳은 죄라고 한탄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자기 배만 불리는 세도정치 아래에서 조선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의 봉기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기존의 성리학과 달리 평등을 강조하는 천주교와 동학이 일반 백성들 사이에 퍼진 것도 이때입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의식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신분으로 차별을 받는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 지배층의 횡포가 더해가니 백성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못 살겠다!" 하면서 전국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평안도 지역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봉기, 그리고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된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평안도는 예로부터 차별을 많이 받은 지역이에요. 평안도 출신은 관직에 진출하는 시험에 통과해도 출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국 무역의 통로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상공업이 발달했지만, 그럴수록 극심한 수탈에 시달려야 했지요. 지역 차별과 사회적 모순,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에 분개한 홍경래는 몰락 양반과 상인들, 농민들을 끌어모아 봉기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봉기를 겨우 수습했어요. 왕이 되기 전까지 평민으로 살았던 철종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으려 했지요. 잘못을 저지르는 관리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정보요원을 파견하기도 했으나 이미 부정부패가 만연한 터라 큰 효과는 볼 수 없었습니다. 철종의 개혁 의지는 세도 가문의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좌절되었어요. 힘없는 왕의 한계였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몰락의 길을 걷는 시기였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이러한 역사를 되새기며 앞으로의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 고민해 보야할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