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사람일까?
우선 '단군'이라는 명칭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군을 성이 단 씨인 사람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단군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직책입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대통령, 조선시대로 따지면 왕을 뜻하는 명칭입니다. 단군의 정식 명칭은 단군왕검입니다. 단군왕검이라는 단어를 나눠보면 '단군'에는 제사장, 무당이라는 뜻이 있고, '왕검'은 정치적 지도자,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왕검'이라고 하면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는 겁니다. 지금 상황으로 바꿔본다면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정치를 하다가 일요일에는 교회나 절에 가서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형태인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과거 군장국가에서는 가능한 권력 형태였습니다. 따라서 단군을 단순히 고조선의 임금이라고만 일컫는 것은 오해를 살 여지가 있습니다. 임금 하면 우리는 보통 정치 지도자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단군은 종교와 정치권력이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 사회의 우두머리였던 것입니다. 단군과 관련해 교과서든 교양서든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아래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군의 모습이라면서 나오는 그림인데, 어느 책을 보든 똑같이 이 그림이 실려 있을 겁니다. 그러면 수천 년 전에 그린 그림이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사실 단군의 생김새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그림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조상님들이 많은데, 이분들을 선현이라고 부릅니다. 나라에서는 이러한 선현 92명의 표준 영정을 만들어 앞으로 이분들을 책 등에 표현할 때는 같은 그림을 쓰라고 지정합니다. 위인의 모습을 제각기 마음대로 표현하면서 초래하는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입니다. 이후 여러 선현의 영정이 통일되면서 단군의 영정 또한 이 그림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동아시아 3국의 건국신화 비교
단군을 이야기할 때 뺴놓을 수 없는 단군신화에 관해서도 살펴봐겠습니다. 단군신화를 자세히 소개하기 전에 동아시아 3국, 즉 우리와 이웃한 중국과 일본의 건국 신화와 우리의 건국신화를 서로 비교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선 중국의 건국신화를 살펴볼까요? 중국은 워낙 큰 나라라서 그런지 신화 또한 스케일이 큽니다. '반고'라는 거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요. 이 거인이 1만 8000년 동안 잠을 자고 일어나 세상을 쭉 밀어내자 윗부분은 하늘이 되고 아랫부분은 땅이 됩니다. 그 거리가 9만 리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만든 거인이 죽으면서 한숨을 쉬었는데, 그 한숨이 바람과 구름이 되고, 죽을 때 지른 비명이 벼락이 되고, 두 눈은 각각 태양과 달이 됩니다. 또 몸의 뼈는 산맥, 혈관은 하천이 되고, 머리카락은 초목, 하늘을 받치면서 흘린 땀은 비와 이슬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의 건국 신화는 어떻까요? 천상계에서 세명의 신령이 태초 혼돈의 바다를 내려보다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남신(이자나기)과 여신(이자나미)을 만들어냅니다. 이 두신이 신령에게 받은 마법 창을 바다에 넣어 휘저은 후 꺼내니 소금이 쌓여 땅이 생기고, 이곳에서 남신과 여신이 결혼하여 여러 신들을 낳고 자연을 탄생시킵니다. 그런데 그만 불의 신을 낳던 이자나미가 타 죽고 말아요. 죽은 이자나미를 찾아 황천국까지 갔던 이자나기는 결국 도망쳐 나오게 되는데요. 이후 부정한 몸을 씻기 위해 목욕을 하던 중 태양과 달과 바다의 신이 생겨납니다. 이 중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여신이 일본 황실의 조상신이고, 그녀의 후손이 지금의 천황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지배할 때 일본과 조선의 조상이 동일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단군을 아마테라스의 남동생인 스사노오라며 단군과 아마테라스 여신이 남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참 큰일 날 소리죠?
단군 신화
이제 단군신화로 돌아와 봅시다. 하늘의 신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인간 세계를 지켜보던 환웅은 어느 날 구름을 타고 풍백, 운사, 우사라는 바람, 구름, 비를 주관하는 신들과 함께 세상에 내려와, 널리 인간을 이롭한다는 홍익인간의 뜻으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얼마 후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잘 알듯이 쑥과 마늘을 이용한 시험에서 곰만 버텨내 마침내 사람이 되었고, 이 웅녀가 환웅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 단군왕검입니다.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당대의 상황을 알려주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환웅이 데려온 신이 바람, 구름, 비였다는 점에서 고조선이 농경 국가였음이 드러납니다. 농사를 짓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게 바람과 구름, 비 같은 환경요인이니까요. 또 신이 내려와 인간을 이롭게 하려 했고, 곰과 호랑이도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인간을 중시하는 아름다운 인본주의 사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족의 기원으로 동물이 등장한 점으로 보아 동물을 숭배하는 토템 사상이 존재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햇빛도 보지 않고 버틴 곰의 이야기, 우리 민족 특유의 은근과 끈기가 엿보이지 않습니까?